시조(始祖) 대보공(大輔公) 휘(諱) 알지(閼智) 탄강태석(誕降胎石)
- 경주시 교동 계림 -
계림비각(계林碑閣)
- 사적 제 19호 -
신라 제4대 석탈해왕 9년(서기65년) 3월 왕은 밤에 금성(경주) 서쪽 시림숲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어 이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그가 시림에 가서보니 금색으로된 조그만 궤짝이 나무가지에 달려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으므로 이 사실을 알이니 왕은 사람들을 시켜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한 다음 이를 열어보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왕은 크게 기뻐하며 군신들에게 이르기를 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보내준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하고 거두어 조정에서 길렀다.그런데 그는 자람에 따라 아주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으므로 이름을 알지라 하고 그가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고 또 시림을 고치어 계림으로 이름하고 이로서 국호를 삼았다.아무튼 이 계림은 우리 김씨부족이 웅거하여 왕가로 기반을 닦은 김씨의 발상지이다.
계림세묘(계林世廟)
- 경주시 황남동 -
휘 알지께서는 석탈해왕의 아들 각간 강호의 따님(즉 석탈해왕의 손녀)을 배필로 맞이 하셨으니 이가 곧 마정부인 석씨이시다.석탈해왕은 당초 알지공을 태자로 책봉하셨다.
그후 알지공은 벼슬이 대보(지금의 총리)에 이르렀고 탈해왕은 왕위를 알지공에게 전수하려 하였으나 알지공께서는 굳이 사양하여 파사와(박씨)에게 양보하시었다.
그후 대보공의 7세손인 미추께서 이사금(왕의 칭호)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신라의 김씨 왕조가 시작되었고 이후 대보공의 후예인 김씨가 신라왕조 56왕중 38왕을 지냈으며 이렇듯 자자손손 대를 이어 가면서 유구 2000년을 지내오면서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일대주류를 형성하는 대 종족이 된것이다.
이것을 오로지 성조 알지대보공의 성덕에 힘입은 흥복이라 하겠습니다.
미추대왕릉(味鄒大王陵)
- 사적 제175호 -
숭혜전 (崇惠殿)
- 경주시 황남동 -
대보공 7세손 미추가 조비왕(석씨)의 딸을 맞았는데 왕의 아들이 없으므로 나라사람들이 미추를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시게하니
이로부터 신라김씨의 세계가 웅기하기 시작하여 신라 마지막왕 제 56대 경순왕에 이르기까지 38왕이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신라는 박씨가 10왕으로 역년이 232년이요 석씨가 8왕 역년이 173년이요 김씨가 38왕 역년이 578년으로서
결국 56왕 992년(기원전57년부터 서기 935년까지)동안에 신라시대의 대부분을 신라김씨가 왕권을 계승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