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족보사를 고찰하면 약400년전에 간행된 족보가 있는가 하면 최근세에야 간행을 본 씨족도 있으니 족세(族勢)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우리씨족은 지금으로 부터 약 240여년전에 시보(始譜)가 이루어졌으며 당시에 각파의 보단(譜單)이 통일되지 않아 현재 4세이신 수 자조(壽 字祖)를 시기일세(始起一世)로 하면서 후손(後孫)들이 밝히라 하였다.
그 후 정사보(丁巳譜(五次時))까지 선(鐥),진(進),정보(精寶)까지는 발견되었으나 명확(明確)치 못하여 상계(上系)에 계대(系代)치 못하던 중 신유보시(辛酉譜時)에 제종(諸宗)의 열망에 따라 제기관(諸機關)과 범신라김씨 종무원(凡新羅金氏 宗務院)의 사료(史料)와 동원(同源) 방계(傍系)(경주(慶州) 익화(益和)충주(忠州))의 보첩(譜牒)에 의거하여 선(鐥),진(進),정보(精寶) 경숙(鏡淑),수(壽) 선계(先系) 소목(昭穆)을 명료(明瞭)히 밝혔다.
보첩(譜牒(族譜))은 한 족속(族屬)의 계보(系譜)를 적은 책
※ 언양김씨(彦陽金氏)의 보첩발행(譜牒發行) 년도(年度) 및 보첩명(譜牒名)은 아래와 같다.
회수 | 년도 | 보첩명 | 장소 | 비고 |
一次 | 1767年 | 정해보(丁亥譜) | 천안 | |
二次 | 1806年 | 병인보(丙寅譜) | 정읍 | |
三次 | 1842年 | 임인보(壬寅譜) | 정읍 | |
四次 | 1873年 | 계유보(癸酉譜) | 정읍 | |
五次 | 1917年 | 정사보(丁巳譜) | 서울 | |
六次 | 1957年 | 정유보(丁酉譜) | 광주 | |
七次 | 1981年 | 신유보(辛酉譜) | 남원 | 언양군(彦陽君) |
1986年 | 신유보 증보판(增譜版) | 서울 | ||
1994年 | 신유보 증보판(增譜版) | 서울 | ||
八次 | 2001年 | 신사보(辛巳譜) | 서울 | |
2006年 | 신사보 증보판(增譜版) | 서울 |